제주는 화산섬이다. 그리고 제주는 신화의 섬이다.
그 두 개의 속성이 만나는 공간이 있으니, 바로 ‘동굴’이다.
동굴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다.
그 어두운 속에는 태초의 신들이 잠들어 있고,신화 속 이야기들이 회오리처럼 얽혀 있다.
이번 글에서는 제주의 대표적인 신화적 동굴인 만장굴, 용천동굴, 설문대할망굴을 중심으로
그곳에 스며든 전설과 실제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함께 소개한다.
1. 만장굴 – 용이 살았던 전설의 용굴
만장굴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세계최장의 용암동굴 중 하나로, 길이가 약 7.4km에 달하는 거대한 지하 터널이다.
이 동굴은 약 20만 년 전 한라산의 분화로 형성되었으며,내부는 고드름처럼 매달린 용암석, 흐르듯 고정된 용암벽,
용암이 만든 기둥과 천장들이 마치 다른 세계처럼 펼쳐진다.
만장굴은 단지 자연의 신비에 그치지 않는다. 이곳에는 ‘용이 살던 동굴’이라는 전설이 함께 전해진다.
제주에서는 과거, 용은 물을 다스리는 신령한 존재로 여겨졌는데,이 동굴 깊숙한 곳에 그 용이 살며 물길을 만들고 지하세계를 열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동굴 끝에는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된 ‘용의 방’이 존재한다. 실제로 아무도 발을 들이지 못하는 그 공간은
전설과 현실이 만나는 상징적 장소로 남아 있다.
관광객들은 약 1km의 일반 개방 구간을 걸을 수 있으며, 동굴 내부는 서늘하고 미묘한 조명과 함께
지구 속 깊은 곳에 있는 듯한 이질적 경험을 선사한다.
2. 용천동굴 – 물의 여신과 제사의 공간
용천동굴은 만장굴과 마찬가지로 제주의 대표적인 용암동굴 중 하나이지만,
일반적인 관광지보다는 학술적·문화적 가치가 더 크다.
용천동굴의 가장 큰 특징은 동굴 내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물웅덩이와 맑은 물줄기다.
이 동굴은 신화적으로는 용천신(龍泉神) 혹은 물의 여신이 깃든 곳으로 전해진다.
과거에는 이 동굴 앞에서 비를 기원하거나 마을의 수맥을 지키기 위한 제사가 열렸다고 하며,
지금도 일부 지역주민들은 이곳을 신성한 당(堂)처럼 여긴다.
또한 이 동굴의 입구에는 제주의 당산신앙, 해신신앙과 관련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동굴 안에서 발견된 돌무더기, 금줄, 헌물 등은 동굴이 단지 지질 명소가 아니라 신화적 제의 장소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현재는 탐사 연구를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사전 신청 시 전문 해설과 함께 소규모 탐방이 가능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3. 설문대할망굴 – 여신이 빠져 죽은 슬픈 전설의 장소
설문대할망굴은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비교적 작은 동굴이다.
이곳은 ‘설문대할망’ 신화와 직결되는 공간이다.
전설에 따르면, 거인 설문대할망은 500명의 아들을 키우다 탈진했고, 마지막으로 이 굴 앞바다에서 목욕을 하다 빠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 동굴은 단지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설문대할망이라는 제주 창조신화의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굴의 입구는 바다를 향해 열려 있으며, 신화 속 그녀가 바다로 사라져간 장면을 연상케 하는 풍경을 가진다.
이곳은 현재 설문대할망전시관과 함께 테마공원 형태로 운영되며, 동굴 주변에는 그녀를 기리는 조형물, 신화 벽화,
전설을 시청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시 콘텐츠가 마련돼 있다.
특히 여성 여행자, 신화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제주의 여신 문화와 자연신앙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작지만 밀도 높은 성지로 추천할 만하다.
결론: 제주의 동굴은 신화의 출입구다
제주의 동굴은 단지 용암이 만든 통로가 아니다.
그곳은 신들이 머물던 공간이고, 제주 사람들의 상상과 신앙, 생존의 기억이 응축된 신화의 현장이다.
오늘 소개한
- 만장굴(용이 살던 동굴)
- 용천동굴(제사와 물의 여신)
- 설문대할망굴(여신의 마지막 숨결) 외에도
신촌동굴, 벵뒤굴, 당처물동굴 등 신화와 연결된 명소들이 남아 있다.
제주의 동굴을 걷는다는 것은 곧, 신화의 한 장면을 통과하는 경험이며, 태초의 제주의 시간과 마주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