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1910~1945)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암울한 시대였고, 제주도 또한 그 중심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시기 제주는 단순한 식민지의 한 지역이 아니라, 전략적 요충지이자 수탈의 현장, 그리고 동시에 저항과 생존의 땅이었습니다.
육지보다 폐쇄적인 지형 특성 때문에 일제는 제주를 군사 요충지, 노동 착취처, 이민 실험지로 삼았으며, 많은 제주도민이 고통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저항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지금은 여러 유적과 관광지를 통해 그 역사를 직접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제강점기 제주도의 변화와 그 의미를 정리하고, 그 흔적이 남은 장소들을 소개합니다.
1. 군사화된 섬 – 요새로 변해간 제주도
일제는 제주도를 태평양 전쟁 대비를 위한 군사 요새화의 핵심지로 여겼습니다. 특히 1930년대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일본군의 방어진지, 군용 비행장, 해안포대 등이 제주 전역에 건설되었고, 제주도민들은 강제 동원되어 시설 건설에 투입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알뜨르 비행장이 있습니다.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일대에 위치한 이 비행장은 1936년 일제가 구축한 군용 활주로와 격납고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도 활주로 흔적과 일본군 진지, 벙커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은 현재 **‘알뜨르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매년 8월 15일 평화와 인권을 기리는 문화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거대한 초원 위에 남겨진 콘크리트 구조물들은 당시 전쟁 준비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입니다.
또한 제주시 구좌읍의 제2공항 건설 예정지 일대에도 일제 시절 군사 기지가 다수 존재하며, 일부 지역은 제주 해안포 진지 탐방 코스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일본군이 뚫은 동굴진지, 병참고, 사격장 등 당시 전쟁 준비 흔적을 생생히 볼 수 있습니다.
2. 경제 수탈과 강제 노동 – 제주인의 삶이 무너졌던 시절
일제는 제주에서 감귤, 해산물, 목축 자원을 수탈했고, 심지어 인력마저 강제 징용해 군수산업에 동원했습니다. 강제징용노동자, 정신대, 군속 등으로 끌려간 제주도민의 수는 수천 명에 달하며,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특히 조천읍 북촌리, 애월읍 곽지리 등에는 강제노역 갱도와 일본군 탄약고가 남아 있으며, 이는 현재 일부 마을 해설사들의 안내를 통해 공개됩니다.
또한 강제노동 현장이었던 대표 유적으로는 절부암 탄약고 동굴, 사계리 벙커, 한경면 군사터널 등이 있으며, 일부는 관광지와 연결되어 당시의 암울했던 역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 중입니다.
3. 이민의 땅 – 일본의 제주인 해외 이주 정책
일제는 제주도 인구를 억제하고 식민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제주인을 일본 본토, 오사카, 홋카이도, 사할린, 중국 동북지역 등지로 이주시켰습니다.
1930~1940년대는 제주 출신 이주민이 폭증한 시기로, 이로 인해 ‘제주도는 곧 이민의 섬’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이주자 중 많은 이들이 가난을 피해 자발적으로 떠났지만, 실상은 일제의 통제 하에 노동 착취와 민족 차별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전시가 열리는 곳으로는 제주이민사박물관이 대표적입니다.
이 박물관은 제주시 신산로에 위치하며, 제주인의 이주 역사, 특히 일제강점기 이민과 조선인 징용의 실태, 후손들의 삶 등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4. 저항의 역사 – 일제에 맞선 제주인들
일제의 억압에 맞서 싸운 제주인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독립운동가 김시범, 양용하, 고수선 등이 있으며, 특히 제주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은 최근에서야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제주시 건입동에는 김시범 지사 생가터, 일제감시대상인물 전시패널, 독립운동 추모비 등이 있으며, 이는 제주인의 민족 의식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제주항 일대는 항일운동 선전물이 배포되고 일제의 탄압을 피해 활동하던 인사들이 오갔던 역사적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론: 제주에 남겨진 깊은 상처와 기억
일제강점기는 제주를 병참기지, 노동착취처, 실험지로 바꾸어 놓은 시대였습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제주 곳곳에 남아 있으며, 단순한 유적이 아닌, ‘기억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제주를 여행하면서 자연 풍경만이 아니라,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현장을 함께 돌아본다면,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될 것입니다.
본문에 다 담지 못한 일제강점기 관련 명소 목록
- 서귀포 절부암 동굴포진지
- 제주시 건입동 일본군 관사 터
- 제주시 삼양 해안포 진지
- 표선면 감귤 수탈창고
- 구좌읍 동복리 옛 탄약고 벙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