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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무도(三無島): 거지 없고, 도둑 없고, 대문 없는 제주

by Universe&Bless 2025. 4. 27.

제주도의 폭포


제주는 삼다도(三多島)로도 유명하지만, 또 하나의 별칭인 삼무도(三無島)라는 말이 있다.
삼무도란 ‘세 가지가 없다’는 뜻이다.
바로 거지가 없고, 도둑이 없으며, 대문이 없다는 의미다.
이 표현은 단순한 미화가 아니라, 제주의 자연환경과 공동체 문화를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번 글에서는 삼무도의 진짜 의미와, 이를 느낄 수 있는 제주만의 삶의 방식을 살펴본다.

1. 거지가 없는 섬 – 모두가 서로를 돌본 공동체

제주는 과거 매우 가난한 땅이었다.
화산석으로 이뤄진 땅은 농사에 불리했고,교통이 단절된 섬 특성상 외부 교류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는 ‘거지가 없는 섬’으로 불렸다.

그 이유는 제주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에 있었다.
- 부족한 농산물을 서로 나누고,
- 어촌에서는 고기잡이한 해산물을 함께 나누었으며,
- 마을 단위로 공터(두레)를 운영해 필요한 이웃을 돌보았다.

특히 제주 사람들은 "같이 굶어도 나누어 먹는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낯선 이방인에게도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는 풍습이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제주 곳곳에서는 작은 밥상 하나로 나눔을 실천하는 식당이나 가정의 문화를 쉽게 볼 수 있다.

2. 도둑이 없는 섬 – 신과 함께 지키는 사회

제주에 도둑이 없다는 말은 과거 제주의 독특한 신앙 체계와 연결된다.
제주는 ‘신의 섬’으로, 마을마다 수호신(본향신)을 모시는 당이 있었다.
사람들은 신 앞에서 맹세했고,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욕심을 부리는 것은 단순한 죄를 넘어
신을 거역하는 행위로 여겨졌다.

또한 제주 사람들은 강한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서로를 감시하고 격려했다.
- 농사철이면 이웃의 밭일을 같이 거들고,
- 어촌에서는 그물질도 협력해 이루어졌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개인의 탐욕이 설 자리가 없었다.

현재도 제주 일부 지역에서는 문을 잠그지 않고 외출하거나, 길가에 농산물을 무인 판매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제주인이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오랜 삶의 방식이다.

3. 대문이 없는 섬 – 정낭이 지키는 개방의 문화

제주도 민가를 둘러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정낭(삼방지문)이다.
정낭은 세 개의 나무막대를 가로질러 세운 간단한 문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대문 없는 섬’의 상징이다.

제주의 집들은 높은 벽이나 튼튼한 대문 대신
- 단출한 돌담,
- 나무로 된 간이 정낭,
- 낮은 출입문을 설치했다.
이는 강풍을 막기 위해 필요했지만,
동시에 ‘이웃을 막지 않고’, ‘외부를 경계하지 않는’ 심성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정낭의 위치와 갯수는 방문자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 세 개 걸려 있으면 ‘외출 중’,
- 두 개 걸려 있으면 ‘잠깐 외출’,
- 하나도 없으면 ‘집에 있음’.

즉, 대문 대신 정낭으로 소통하며 이웃과 신뢰를 기반으로 생활했던 것이다.
오늘날 제주민속촌이나 일부 전통마을(가령 하도리, 성읍민속마을)에서는 정낭과 대문 없는 생활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결론: 삼무도, 제주가 지켜온 따뜻한 질서

삼무도는 단지 ‘없는 것’을 자랑하는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없는 것을 통해 무엇을 지켰는지를 말해준다.
거지가 없는 것은 나눔을, 도둑이 없는 것은 신뢰를, 대문이 없는 것은 개방과 공동체를 상징한다.

오늘 소개한
- 공동체 정신을 느낄 수 있는 하도리,
- 신앙 문화가 살아 있는 조천읍 본향당,
- 대문 없는 전통마을인 성읍민속마을 등은
삼무도의 정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제주를 여행할 때, 눈에 보이는 경관 너머,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오래된 신뢰와 나눔을 느껴본다면,
비로소 진짜 ‘삼무도’를 만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