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굿판, 그 현장의 기록
디스크립션: 주제 소개
한때 제주도의 마을마다 울려 퍼지던 북소리와 굿창(무속 노래).
그 굿판은 단지 신을 부르는 의례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소망이 모이고, 고단한 삶을 위로받는 공동체 치유의 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주의 굿판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무속에 대한 사회적 편견, 종교 갈등, 젊은 세대와의 단절로 인해 굿은 점점 기억에서 멀어지는 전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은 사라져가는 제주 굿판의 현실과 그 안에 남은 문화적 가치, 그리고 기록의 필요성을 다룹니다.
1. 왜 굿판은 줄어들고 있는가 – 사라지는 공동체 의례
제주 무속은 오랫동안 마을의 일상 속에 녹아 있었고, 그 중심에는 당굿, 영등굿, 삼승굿 같은 공동체 굿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굿은 단지 종교 의례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바다의 평온과 풍요, 자식의 건강,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공공 의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주에서는 굿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마을에 굿을 하던 장소는 관광지나 주택단지로 바뀌고, 굿을 올리던 심방은 나이가 들어 은퇴하거나 후계자를 찾지 못해 끊기는 사례가 많습니다. 더불어, 무속에 대한 종교적·사회적 편견은 굿판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기독교 등 일부 종교에서는 무속을 ‘우상숭배’로 간주하며 굿 진행을 방해하거나 주민들의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일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소음 민원, 장소 허가 문제, 무속인을 향한 차별적 시선 역시 굿판이 줄어드는 현실적 이유입니다.
전통적으로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굿은 삶의 일부’라는 인식이 현대에는 ‘굿은 과거의 유물’처럼 느껴지는 세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2. 심방은 어디로 갔을까 – 무속의 계승과 현실의 간극
제주 굿의 핵심 주체는 심방, 즉 제주 무속인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굿을 주관하는 인물 그 이상으로, 신화와 본풀이를 전승하고, 공동체의 고통과 바람을 대신 전달하는
정신적 중개자이자 문화의 전달자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제주에서 활동 중인 심방은 약 300~400명 정도로 줄었으며, 그 중 60~70% 이상이 60세 이상 고령자입니다.
신내림을 받은 젊은 세대가 극히 드물며, 젊은 사람들이 이 직업을 택하려 하지 않는 데에는
경제적 불안정, 사회적 시선, 종교적 탄압 등 복합적 이유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무속이 전통사회에서 차지하던 공공적 역할이 줄어들며 굿의 규모는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예전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밤새도록 치르던 굿도 이젠 몇 시간짜리 의식 행사나, 공연화된 형태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방’이라는 존재는 점점 기록 속 인물로만 남아가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굿을 보거나 참여한 기억조차 없고, 무속은 가까이 접할 수 없는 비일상적인 문화로 느껴지는 현실입니다.
3. 문화유산으로 남을 수 있을까 – 굿판을 기록하는 새로운 시도들
비록 제주에서 굿판은 줄어들고 있지만, 그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보존하려는 움직임도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주큰굿’은 국가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제주도의 여러 굿 의례들은 유형과 무형 자산으로 보호받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학계에서는 제주 무속을 단순 민속이 아닌 신화적 체계와 예술, 공동체적 상징이 결합된 복합문화로 보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굿판 연구, 심방 인터뷰, 본풀이 채록 등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심방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의례를 유튜브, 다큐멘터리, SNS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공개하며
굿의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주의 굿판은 단지 무속이 아닌, 신화·서사·소리·춤·정서가 결합된 민속예술이자 공동체 치유의 문화유산입니다.
그렇기에 굿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 공유하고 배워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결론: 잊히기 전에 남겨야 할 굿판의 목소리
굿판은 단순한 제례나 종교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제주 사람들의 정체성, 자연에 대한 경외심, 공동체의 소통방식이 응축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제주적인 문화유산입니다.
비록 이제는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굿이 남긴 춤사위, 북소리, 이야기, 의상, 사람들의 표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록되고 공유되어야만 합니다.
제주 굿판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현장의 유산이며, 후대에게 남겨야 할 문화의 숨결입니다.